AX는 전직원이 AI를 신나게 쓰면서부터 진짜 시작된다
요즘 어딜 가나 AI와 AX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막상 "전사가 AI를 잘 쓰게 만든다"는 건, 역시나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저는 AI 전문가는 아니지만, 기술자였다가 조직문화와 일하는 법을 담당하게된 사람으로서 최근에는 전사 AX라는, 정해진 답이 없는 영역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AI라는 바다를 향해 수많은 구성원들이 배를 띄우고 잘 나아가게 만드는 여정을 정리해봤습니다. 멋있는 프레임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에게 일어난 일과 일어날 일을 4개 페이즈로 정리해봤습니다.
Phase 0. 항구 - 경영진의 인식과 인프라
이 단계가 왜 0번이냐 하면, 여기서 막히면 시작조차 안 되기 때문입니다.
AX는 결국 비용과 권한을 고민하고 결정하고, 결과적으로 문화를 바꿔가는 일입니다.
누군가는 "이 도구를 회삿돈으로 결제해도 된다"라고 말해줘야 하고, 누군가는 "이 데이터에 AI를 붙여도 된다"라고 결정해줘야 합니다. 이게 안 풀린 회사에서 실무자가 아무리 똑똑해도 AX는 돌아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Phase 0에서 한 건 거창하지 않았습니다.
- 경영진이 "AI는 비용이 아니라 투자"라고 공식적으로 인정해주기
- 직군 가리지 않고 AI 도구 사용 비용을 회사가 지원
- AI 안전성과 비용을 모니터링하는 최소한의 플랫폼을 깔고 운영할 책임자 지정/모시기
이 세 가지가 깔리면, 그 다음부터는 사람이 알아서 움직입니다. 요점은 "완벽한 인프라"가 아니라 "움직여도 된다는 신호"예요.
Phase 1. “바다로 가보시죠!” - 동경을 만드는 단계
사람들에게 배 만드는 법을 가르치고 싶으면, 배 만드는 매뉴얼을 들이밀지 말고 바다를 동경하게 하라.
저희는 이 유명한 문구를 기반으로 움직였습니다. AI 나 LLM 지식 설명이 아니라, 우리가 왜 움직여야 하며 그바다너머에는 어떤 멋진 세상(?)이 있는지 보여드린거죠.

- LLM이 뭔지 설명하는 대신, "이 도구로 내 일이 이렇게 바뀌었다"를 보여줬습니다. 예를 들면 제가 스케줄정리, 인터뷰 스크립트 기반 면접 결론 정리 등을 어떤 지침을 가지고 하는지 결과물을 보여드렸습니다.
- AI 해커톤도 열었습니다.
- 그 다음에 가장 효과가 컸던 건 "저 사람도 하고 있다" 시리즈입니다. 일부러 제가 (개발지식도 있고 이런 도구가 어려워도 혼자 공부해서 잘 쓸것 같은 사람) 아닌, 비개발 직군 동료가 AI를 가지고 만든 결과물을 끌어올려 공유했습니다.
대표적인 두 사례를 소개합니다.
사례 1. HR 동료의 인터뷰 스케줄링 자동화 서비스
컴퓨터를 전공했지만 "코딩하기 싫어서" HR로 온 동료가 있습니다. 그분이 어느 날 AI 코딩 도구로 사내 캘린더와 연동되는 면접 스케줄링 도구를 직접 만들었습니다. 면접관 3명이 모두 비는 시간 + 그때 비어있는 회의실을 알아서 찾아주는 도구입니다. 원래 1시간씩 걸리던 일정 잡기가 5분 안에 끝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례 2. 디자이너가 만든 제품 스크린샷 크롬 익스텐션
사용자 매뉴얼을 만들 때 임시 텍스트와 버튼을 일일이 보정하는 일이 너무 귀찮았던 디자이너가, 웹페이지의 임시 요소를 깔끔하게 정리해서 스크린샷을 만드는 크롬 익스텐션을 직접 만들었습니다. 본인 편하려고 만든 건데, 공유하자마자 사내 여러팀들이 해당 익스텐션을 가져갔습니다.
이런 사례들이 켜켜히 쌓이면서 분위기가 확실히 바뀌었습니다. "쟤도 했다 = 나도 할 수 있겠다"의 문법은 어떤 교육보다 강력합니다.
Phase 2. "가는건 좋은데 쫌만 살살.." - 가두리(Harness)의 단계
이 단계가 진짜로 시작되는 건, 이상하게도 Phase 1이 '너무 잘 되기 시작한 직후'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둘 직접 만들기 시작하면 다음 풍경이 펼쳐집니다.
- 어디선가 "저 이거 만들고 싶은데 admin 권한 좀…, api key 좀.."이라는 요청이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 또 어떤 분은 "작은 스크립트면 충분한 일"인데 "웹서비스 호스팅이 필요해요"라고 옵니다.
- 그리고 어디선가 AI 비용이 야금야금 튀기 시작합니다.

이 단계에서 우리가 배운 건 명확합니다. 자유는 가드레일이 있을 때만 가속됩니다.
회사 문화 설명할때도 자주 설명하는 “적절한 조율 속에서의 극도의 자율” 같은 개념인거죠. 이것도 결국 큰 차원에서 요즘 이야기하는 “하네스(Harness)”의 일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참고로 저희 회사에서는 가두리 라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ㅎㅎ 적절한 가두리를 만들고 그 안에서 마음껏 날뛰게 하자!)

그래서 우리는 AI Foundation 이라는 조직도 만들고, 여러 운영 장치를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 권한/보안 가드레일 — "정말 필요한가? 어디까지 필요한가?"를 묻는 절차. 최소권한 원칙 위에서실험을 허용.
- AI 비용 가시화 — 누가 얼마나 쓰는지 보이게 만들고, 통제가 아니라 자기인식의 도구로 사용.
- 프로덕티파이(Productify) 스킬 가이드 — 동료들의 문제를 듣고, 호스팅·인프라까지 갈 일인지, 사실 "스크립트 한 개"면 끝나는 일인지 함께 판단해주는 claude/notion 용 스킬. 가장 가벼운 MVP를 찾아주는 작업입니다. ( 혹시 관심 있을 분들을 위해 퍼블릭 깃헙 링크로 올려봅니다 )
그리고 또 한가지, 전사에 이러한 것들이 잘 퍼지게 만들기 위한 키 액션이 따로 있습니다.
한 사람이 전사 AI를 가르칠 수 없다 - 준전문가 양성
AI Foundation 라는 팀은 AX 영역에서 많은 기준과 BP들을 만들고, 직접 AI를 활용하는 제품을 만들어서 제공하기도 하고, 전사 교육등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한 사람, 한 팀이 모든 일하는 방법의 변화를 뿌리내리긴 어렵죠.
예를 들자면 “엑셀 잘 쓰는 법”을 한 회사에서 한 사람이 강의하지 않습니다. 팀 곳곳에 엑셀 숙련자들이 존재해서 팀의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해주곤 하죠.
제가 보기에 AI는 이미 엑셀과 비슷한 위치로 가고 있습니다. 한 명의 전문가가 모두를 가르치는 모델은 곧 작동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각 팀에 에이블러(A.I.bler)라고 부르는 '준전문가'를 만듭니다. (AI 로 일이 되게 한다, 라는 의미를 담은) 그 팀에서 가장 호기심 많고 새 도구를 빨리 받아들이는 사람을 골라, 그 팀의 문제를 함께 풀어주는 파트너로 일정 기간 함께 일합니다.
목표는 그 사람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자기 팀에 다시 돌아갔을 때 "이거 AI로 어떻게 해?"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게 반복되면 어느 시점부터 중앙팀(AI Foundation)이 하지 않아도 자생적으로 굴러가기 시작합니다.
Phase 3. “우리만의 위대한 항로를 찾아” - 표준을 정하고 문화를 만들기

여기서부터는 "도구"가 아니라 "일하는 방식", 즉 문화의 문제입니다.
솔직히 저희도 이제 막 고민이 시작된 미래의 영역입니다. 그래서 답보다 질문이 더 많습니다. 다만 이 질문을 회피하지 않는 회사가 결국 살아남는다고 보고 있습니다.
1) 100점짜리 표준은 없다, 그러니 빠르게 자율실행하면서도 적절한 탑다운 의사결정이 필요하다
AI 시대는 인류역사에 없는 변화의 속도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어제 100점이던 표준이 오늘 80점이 됩니다. 모델이 바뀌고, openAI 나 anthropic update 한방에 궤도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나치게 고정된 표준을 만들지 않으려고 합니다. 대신 빠르게 합의하고, 빠르게 갈아엎는 합의 운영 체계를 만듭니다. 이건 "정답이 없는 환경에서 어떻게 여러 사람이 실험적 시도를 빠르게 해보고, 그 안에서 조직내 최적화된 방식을 어떻게 결정하지?"의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요즘 LLM Wiki 등, 조직 지식체계 구축이 ai agent 잘쓰는 기반 중 하나로 화두입니다.
에이전트가 자동으로 코드/문서를 만드는 시대가 오면서, 회사 내부의 맥락 : 위키·용어집·서비스 정의서 같은 '조직 코어 자산'이 진짜로 중요해집니다.
이를 어떤식으로 수집/가공 할지, 또 어떻게 활용할지등은 모든 회사의 고민이고 모든 팀의 고민입니다. 시작할때는 대항해시대 마냥 자율적이고 바틈업으로 여러가지 시도를 하게 장려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팀간의 합의와 전사적 방향성이 있어야 더 유의미해짐을 깨닫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틈업의 빠른 실행 & 탑다운의 적정레이어까지 의사결정과 합의 도출 이 더 핵심이 될듯 합니다.
지난 시간동안 한번도 이정도 수준으로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일하는 방법론까지 분기,반기 단위로 고민하게 한적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여러 팀, 여러 개발조직, 여러 사업내에서 어떻게 AI를 가지고 함께 일하지? 라는 조직 다이내믹스의 문제입니다.
2) 각자의 전문영역의 선을 어디까지 넘을것인가?
“오늘도 개발자가 안된다고 말했다” 같은 제목의 책도 있었습니다.
이제는 반대가 되었습니다. “오늘도 디자이너가 ‘이거 AI로 하니까 되던대요’라고 말했다”
이건 직무전문성의 위협이라기보다는 새로운 협업 문법의 시작입니다. 기존 애자일이 "전문가들이 모여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며 함께 만든다"였다면, 다음 시대의 협업은 "각자 영역을 슬쩍 넘나들면서 책임은 분명히 나누는 것"에 가깝달까요.
개발자는 안된다 했는데 ai는 된다고 하는 경우, 프론트개발자가 빠트린 것을 백엔드개발자가 쉽게 코딩으로 커버하는 경우 등이 비일비재하게 생기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떤 영역은 점점 사람이 하지 않게 되는 경우들도 생기죠. “각자가 어떤 수준으로 선을 넘으면서도 존중하고, 어떤 타입의 책임을 나눠 가지며, 어떤 대화를 나누면서 협업 가치를 높여야할지”등을 고민하며 문화적 가이드를 제시해야할겁니다. (디자이너분이 쓰신 ai로 인해 빠른 해결과 부가가치의 제한에 대한 고민을 쓰신 이런 글도 있었어요)
물론 이 과정에서 팀의 구성 자체도 달라질거란 이야기는 이미 많이들 하고 있고요.
3) 그래서 우리는 누구를 영입해야 할까?
- 자기 영역의 전문성은 여전히 필요합니다. 다만 자기 영역에 갇히지 않는 사람의 가치가 빠르게 올라가고 있습니다.
- "AI를 다룰 줄 안다"는 점점 자격증이 아니게 됩니다. 진짜 차이는 자기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과 틀려도 빠르게 다시 시도하는 태도에서 나옵니다. AI도 처음엔 맥락 모르는 천재바보였다가 끊임없는 피드백으로 자가발전 하듯이요.
- 저는 요즘 지식이 아닌 지혜를 가진 사람이라고도 표현하는데, 결국 철학과 논리를 코어로 가지고, 쉽게 지식을 습득가능한 세상에서 다채로운 문제를 본질부터 풀어나가는 사람 = 지혜로운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회사는 앞으로의 시대에 어떤 사람들, 어떤 기준이 인재를 영입하는데에 있어 중요하다 생각하시나요?
마치며 - 왜 우리는 이 바다로 가야하지?
우리도 아직 항해 중입니다. 다만 분명한 건, 이 바다는 잠잠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능한 한 빨리, 그러나 가능한 한 다 같이 나가보려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AI에게 많은 영역을 위임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얻은 시간을 각자가 더 깊은 문제, 본질적인 고민해서 더 큰 임팩트, 더 위대한 여정에 집중한다면 똑같은 구성원 규모로도 빠르게 미션을 향해 나아갈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이 말처럼, 한 치 앞도 모르는, 하지만 반드시 뛰어들어서 적응하고 넘어가야 하는 이 파도치는 바다로 함께 항해하다보면 지금보다 조금씩은 답을 향해 나아갈거라 믿습니다.
이 글이 비슷한 항해를 시작하려는 누군가에게 작은 해도(海圖)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p.s. 혹시 언젠간 위대할지도 모르는 항로를 함께하는 도도도독, 동료가 되고 싶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