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강남언니의 프로덕트 디자이너 Summer입니다.
고객에게 하나의 가치를 주는 기능을 개발하는 데에 얼마나 걸리나요?
라고 누가 물어본다면, 저는 일주일 정도라고 답할 것 같습니다. 강남언니 팀은 빠르고 작은 단위의 개발 주기를 통해 고객에게 꾸준히 가치를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가 속해 있는 스쿼드에서는 하나의 기능을 개발하는 데에 3일을 넘기면 안 된다는 철칙이 있을 정도예요. 그러다 보니 가치를 전할 범위를 최대한 작게 쪼개고, 작은 단위 내에서 빠르게 의사결정하며 구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이전까지는 이렇게 짧은 프로세스를 접해 보지 못했었는데, 강남언니에 합류한 후 이런 프로세스를 처음 접해보니 저는 자연스럽게 시간과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한정된 시간 앞에서 가장 어려웠던 건 사용자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제한적이라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디자인 과정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디자이너인 제 앞에 놓여진 여러 단계 중 와이어프레임 단계를 줄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막연히 우리는 작은 단위의 개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와이어프레임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적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와이어프레임을 디자인된 컴포넌트로 만들어 검증하면 어떨까?'에 대해 생각했었어요. 강남언니는 디자인 시스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와이어프레임을 위해 수많은 네모를 그리는 것보다 디자인된 컴포넌트를 화면에 얹으면서 검증하면 더 쉽고 빠르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와이어프레임을 디자인 시안처럼 그려서 스쿼드원들과 소통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와이어프레임을 따로 그리지 않으니 시간을 아꼈다고 느껴졌었어요. 그런데, 계속 이렇게 하다 보니 이런 문제점이 생겼습니다.
- 그려진 화면의 그래픽적 밀도가 이미 완성 단계로 높아서, 아이디어에 대한 발산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 그러다 보니 니즈에 대한 검증보다 구현에 대한 검증을 먼저 하게 되었습니다.
고객이 이 기능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에 대해 생각하기 전에,이 기능이 개발 가능한 것일까?
와 같은 실현 가능성에 대해 먼저 논의하게 되더라고요. - 논의 주제가 구현에 포커싱되면, 자연스럽게 개발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어요. 그러다 보니 어떤 주제에 대한 스쿼드 구성원들의 생각을 충분히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문제와 해결 방법에 대해 모두가 동일한 이해도를 가지고 있는지도 파악할 수 없겠더라고요.
이런 방법으로 당장 UI를 그리는 시간은 줄일 수 있겠지만, 팀원들과 생각을 자유롭게 나누지 못하게 되었어요. 그동안 막연히 디자인의 밀도는 높을수록 좋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었는데, 밀도가 너무 높아지니 오히려 디자인이 자유로운 생각을 방해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아이디어를 발산하고 수렴하는 것에 대한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더 많이 들게 되었습니다.
문제점을 빨리 해결해야 했어요.
와이어프레임으로 공유된 이해 만들기
처음에는 스쿼드 구성원 모두가 아이디어에 대한 의사결정에 참여해서, 우리가 해결하려고 하는 목표에 대한 동일한 이해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디자인을 하기 이전, Invision에서 제공하는 Freehand를 통해 모든 구성원이 아이디어를 발산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습니다. 목표와 연관된 미션을 제시하고, 구성원별로 칸을 만들어 그 안에서 미션을 해결하는 방식이었어요.
이렇게 해 보니 스쿼드원 모두가 하나의 같은 목표를 이해하고, 같은 기능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당장 이 아이디어가 획기적이지 않거나 너무 무모하더라도 미션을 수행하면서 같은 목표를 공유할 수 있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와이어프레임을 모두가 이야기할 수 있는 장으로 만들기
그 다음 프로젝트에서는 제가 어떤 것을 정의하는 것이 아닌, 논의거리를 대충 던진다는 생각으로 아주 러프한 와이어프레임을 그려 보았습니다. 제가 생각하고 있는 아이디어에 대한 뼈대를 1~2시간 안에 대강 그리고, 자세한 정책은 적지 않았어요. 나머지는 스쿼드원 분들이 와이어프레임 위에 자유롭게 의견을 적도록 했습니다. 더 긴밀한 논의가 필요한 내용은 포스트잇과 같이 다른 형태로 기록해 두고, 회의 시간에 모두가 이 화면을 보며 논의했어요.
이 방법이 손에 익고 난 후에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A안 / B안을 통해 논의거리로 던질 수 있게 되어, 짧은 시간에 여러 아이디어에 대한 논의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와이어프레임으로부터 결과를 만들고, 맥락을 함께 보여주기
이 방법을 계속 하다 보니, 화면 위의 논의가 많아지면 화면을 보는 것이 복잡해져서 논의 결과에 대한 내용을 한눈에 보기가 어려웠어요. 그래서 논의를 통해 정리된 내용은 휘발되지 않도록 Notion에 있는 에픽문서에 따로 적어 두었습니다. 대신 논의한 Freehand 링크를 함께 달아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의사결정의 맥락까지 함께 볼 수 있게 했습니다.
또, 이 방법을 지속하면서 논의를 통해 완성된 디자인까지 논의 내용 아래에 같이 올려 보았어요. 이렇게 해 보니 어떤 의사결정에 대한 맥락부터 결과까지 한 화면에서 쉽게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디자인 이후에 놓친 지점에 대해서도 피드백을 받을 수 있어 디테일한 부분까지 챙길 수 있게 있었어요.
모두가 더 즐겁게 이야기 나누기
이런 논의는 모두가 함께할수록 더 풍부해집니다. Freehand의 장점은 여러 사람이 동시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인데, 모두가 동시간대에 Freehand에 참여해서 논의가 더 활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넛지를 통해 돕고 있어요. 스쿼드 동료분들께 와이어프레임을 공유할 때 논의 참여에 대한 넛지를 함께 주고 있는데, 주로 논의 후 미션이 있다는 것을 함께 알려 논의 참여를 유도합니다.
미션은 주로 와이어프레임에 대한 의견을 적은 후, 와이어프레임 한켠에 있는 방명록에 자신이 왔다 간 흔적을 남기는 형태입니다. 최근에는 이 미션들이 발전되어 지금은 강남언니 팀 내 하나의 문화가 되어 예술혼(?)을 불태우고 가는 장이 되었어요. 이런 문화가 정착되어 스쿼드원 모두가 즐겁게 논의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고, 활발한 의견을 공유하고 있어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전의 저는 사용자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제한적이라 어려웠는데요. 지금의 저는 이런 와이어프레임을 통해 짧은 시간에 사용자를 더 다양한 시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래서 오히려 시간에게서 더 자유로워졌습니다.
우선, 모두의 이해가 공유된 상태에서 의사결정을 하게 되어 제한된 시간에 풍부한 논의를 할 수 있게 되었어요. 또, 이 과정을 통해 하나의 단계에 대한 의사결정을 빠르게 하고, 그 후에 디자인을 하니 디자인 단계에서의 논의 시간이 많이 줄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하고 있는 고민을 가볍게 던지니까 스쿼드원 분들도 가볍게,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이렇게 저는 와이어프레임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는 밀도를 높여 사용자를 더 다양하게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시간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돌아돌아 찾아가면서, 개인에게 맞는 방법을 찾는 것보다 팀의 환경에 맞는 방법을 찾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는 밀도 높은 디자인을 먼저 제시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방법일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의 환경과 같이 팀원들과 긴밀하게 의사결정을 하고, 사용자에게 가치를 유연하게 전달해야 하는 환경에서는 제가 진행하고 있는 과정에 대해 더 가볍게, 더 자주, 더 적극적인 공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시도들을 하면서 가끔 완벽하지 않은 것을 팀원들에게 보여준다는 것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었는데, 오히려 완벽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혹시 예전의 저와 같이 시간과 싸우고 있었다면, 그리고 팀 안에서의 더 쫀쫀한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시다면, 두려워하지 마시고 대충 그려진 와이어프레임을 꺼내 보길 바랍니다.